나의 메모 역사

다이어리 작성과는 결을 달리한다. 메모장에 두서없이 계속 생각의 흐름대로 적는 자체가 좋다. PC통신 시절에 게시판 도배를 할 정도로 글 남기는 것을 좋아했다. 중학교때 작은 메모장에서 성적, 과제, 시간표를 기록했었던 것이 좋았다. 다이어리가 고1때 생겼는데 누가 훔쳐갔는지 잃어버렸다. 아쉬워서 미니 다이어리를 샀었다. 그때 연예인 사진도 리폼해서 끼워넣고 그랬다. 요즘말로 하면 다꾸인데 그 자체가 재밌었다. 용돈기입장에 많지않은 용돈도 수입 지출로 기록해봤다. 그 자체가 좋았다. 고3때는 대학에서 제공한 스프링노트로 된 다이어리가 있었다. 주간계획에 매일 해야할 공부를 메모하고 다하고 나면 색연필로 지웠고 문제를 풀고 정답이 되는 이유와 안 되는 이유를 한 줄로 표현하는 메모장도 만들어 썼었다. 


대학교때도 다이어리 자체는 좋아했는데 지속성이 없었다. 속지를 그때그때 사야했으니. 그런데 어머니께서 구해오신 인조가죽으로 양장된 스프링노트에도 일기나 넋두리를 적었었다. 그러다가 실연의 아픔이 너무 아파 그날로 기차를 타고 상처를 달래려 계속 메모를 했다. 끝없이 나왔다. 계속해서 글이 새어나왔다. 그 경험 이후 내게 메모는 다른 사람들과는 의미가 좀 달라졌다. 치유의 힘을 가진 메모였던거다.


직장에 들어가서도 본격적으로 메모를 했다. 직장선배 중에 메모로 예전일을 기록해둔게 문제해결에 도움을 받는 모습을 직관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나도 메모노트 수첩을 가방 속에 끼고 계속 적었다. 나중엔 선물로 수첩을 받을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메모광이 되었다. 하지만 메모가 쌓이기만 하고 다시 보거나 그러진 않고 관리도 잘 안되었는데 그러다가 A4를 반으로 접어서 메모하는 직장동료에 영감을 받아 난 A4를 두 번 접어 잘라 펀칭해서 묶어 사용했다. 업무에 쓰이는 메모장이었던거다. 따로 메모장에 하려니 어느 순간 지속성에 문제가 왔다.


그러다가 직장을 쉬는 타임이 생겼는데 유튜브에 성과를 지배하는 바인더의 힘이란 책을 리뷰한 내용을 보고 당장 책을 도서관에 빌려 읽었다. 내 고민을 내 시행착오를 단번에 해결해줄 솔루션이 들어있었다. 당시 메모에 대한 내 고민은 메모 자체는 좋았는데 쌓이기만 하고 관리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책에 언급된 바인더는 A5 종이에 20공의 구멍을 내어 관리했다. A6메모장 시절에도 확대복사로 3공 바인더에 넣곤 했었는데 그 아이디어가 책에 들어있어 신기했다. 거기다가 메모량이 기복이 있어 하루에 한 면만 쓸때도 있고 하루에 10면도 더 적을 때도 있었는데 바인더는 얼마든지 새 종이를 편집해서 끼워넣을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다만 책을 읽고 목표설정을 현실적으로 하지 못하고 그냥 흉내만 내본 정도로 끝난 것 같아 계획을 한 번 다시 세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최근이다. 


어쨌든 메모 자체가 내겐 좋은 취미이다. 좀더 개선하고 잘 하고 싶은 분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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